돼지고기 성질이 차서 설사할까? — 우리가 먹는 6개월 어린 돼지의 비밀
"돼지고기는 성질이 차서 몸이 찬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." 한의학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말이다.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설명해왔다. 그런데 궁금해졌다. 왜 찬 성질일까.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.
다들 결과만 말하고 이유는 없다
인터넷을 찾아봐도 마찬가지다. "돼지고기는 차다"까지만 나온다. 그 뒤가 없다. 몸이 찬 사람도 돼지고기를 먹어도 될지 매번 애매하게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.
돼지의 진짜 수명을 알아야 한다
돼지는 원래 10년 넘게 살 수 있는 동물이다. 그런데 우리가 먹는 돼지는 보통 6개월이면 도축된다. 10년 살 수 있는 동물을 6개월 만에 먹고 있는 것이다. 이게 왜 중요할까.
나이 든 돼지와 어린 돼지는 다르다
나이가 들면서 지방이 두꺼워지는 동물이 있다. 지방이 두꺼우면 몸에 열이 쌓인다. 열이 계속 쌓이면 그 자체로 위험하다. 그래서 몸은 균형을 맞춘다. 지방이 두꺼워질수록 몸은 스스로를 차갑게 만든다. 뜨거운 열과 두꺼운 지방이 공존하려면 몸의 성질이 차가워져야 하기 때문이다.
이게 나이 든 돼지, 즉 성체 돼지의 이야기다. 한의학에서 "돼지는 성질이 차다"고 했던 건 이 성체 돼지를 기준으로 한 설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.
우리가 먹는 돼지는 다르다
우리가 먹는 돼지는 6개월짜리다. 지방이 두꺼워지기 전이다. 한창 자라는 중인 어린 돼지다. 성장하는 동물은 몸 안에서 계속 에너지를 만든다. 자라기 위해서는 열이 필요하다.
그래서 어린 돼지는 성체 돼지만큼 차가운 성질이 아니다.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, 중간에 가까운 성질이다.
돼지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말, 요즘은 안 맞다
옛날엔 돼지고기 먹으면 배탈 난다는 말이 흔했다. 성질이 차서 그렇다고 했다. 그런데 요즘 돼지고기 먹고 설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. 위생이 좋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다 되지는 않는다.
이제는 이해가 된다. 우리가 먹는 돼지 자체가 옛날 기준으로 말하던 그 "찬 돼지"가 아니기 때문이다. 어린 돼지라서 성질이 그렇게까지 차갑지 않다.
그럼 몸이 찬 사람은 안심해도 될까
무조건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. 성질이 완전히 뜨겁거나 중립인 것도 아니다. 다만 극단적으로 찬 음식이라고 겁낼 필요는 없다. 평소 소화가 잘 되는 편이라면 돼지고기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.
문제가 생긴다면 돼지고기 자체보다 같이 먹는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. 차가운 냉면, 찬 소주, 찬 쌈장. 돼지고기보다 곁들이는 것들이 몸을 더 차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. 냉커피가 위장을 냉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.
진료실에서 보는 돼지고기
진료실에서 돼지고기 때문에 속이 안 좋다는 분을 보면 돼지고기 자체보다 함께 먹은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. 차가운 냉면 국물, 얼음 동동 띄운 막걸리, 찬 야채. 돼지고기 한 점보다 이런 것들이 위장을 더 차갑게 만든다. 여름철 이열치열 원리도 같은 맥락이다. 몸 안을 차게 하는 게 문제지, 음식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.
자주 묻는 질문
Q. 돼지고기는 정말 찬 음식인가요?
완전히 찬 음식은 아닙니다. 나이 든 돼지는 지방이 두꺼워 성질이 차가워지지만, 우리가 먹는 돼지는 대부분 6개월짜리 어린 돼지라 그렇게까지 차갑지 않습니다.
Q. 몸이 찬 사람도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나요?
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. 다만 냉면, 찬 소주, 찬 쌈장처럼 함께 먹는 차가운 음식들을 더 조심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.
Q. 왜 나이 든 돼지는 성질이 차가워지나요?
나이가 들수록 지방이 두꺼워지고 몸에 열이 쌓입니다. 몸은 그 열을 조절하기 위해 스스로를 차갑게 만듭니다. 두꺼운 지방과 뜨거운 열이 공존하는 방식입니다.
Q. 돼지고기 먹고 속이 안 좋은 이유가 뭔가요?
돼지고기 자체보다 함께 먹은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. 차가운 냉면 국물, 얼음 동동 띄운 막걸리, 찬 야채가 돼지고기보다 위장을 더 차갑게 만듭니다.
돼지고기는 차다는 말. 반은 맞고 반은 오래된 말이다. 우리가 먹는 돼지는 어리다. 그 사실 하나가 많은 오해를 풀어준다.
— 자생력한의사 김하늘